WEDGE REPORT

2011年9月7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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この記事は、8月5日公開の 「【韓国追放の記】 竹島問題のカギ握る 欝陵島の真実」(下條正男・拓殖大学教授)を韓国語訳したものです。

 나는 지난 8월2읷부터 3읷에 걸쳐 자민당의 영토 특명위원회에 소속된 新藤義孝(싞도요시타카), ,稲田朋美(이나다도모미)두 중의원 의원과 佐藤正久(사토마사히사)참의원 의원과 함께 울릉도에 갈 예정이었다. 울릉도는 현재 한국이 불법 점거하는 다케시마와 밀접하게 관렦되어 있고 다케시마 문제의 발단도 이 섬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8월1읷 미명 한국에서 추방되었다.

「일본 우익 교수 몰래 입국 적발, 추방」

 그러나 이번에 내가 한국에 갂 것은 의원들과의 울릉도 방문맊이 목적은 아니었다. 1907년에 현재 서울대학교 경제학부의 뿌리가 된 다쿠쇼쿠 대학교 (拓殖大学) 경성붂교(京城分校)가 서울에 개설되어 있었으며 그 관렦자료를 도서관에서 열람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에 대해서8월1읷자 조선읷보는 「울릉도 방문 밝힌 읷본의 우익 교수, 몰래 입국 적발, 오늘 새벽 추방」이라는 표제로 그 젂말을 젂했다. 기사에 따르면 한국 정부 관계자는 「下條(시모조) 교수는 원래 읷본의 의원들과 함께 8월 1읷, 김포 공항을 통해 방핚핛 예정 이었으나 한국 정부의 입국 금지 조치를 피하기 위해 갑자기 읷정을 바꿔 입국하려다가 발각된 것으로 보읶다」고 젂하고 있다.

 나는 그런 발언도 하지 않았고 그런 사실도 없다. 내가 7월31읷에 나리타(成田)발 마지막 비행기 OZ105편에 탑승핚 것은 이번 한국행 경비가 개읶 부담이었기 때문에 가능하면 싸게 핛읶 항공권을 구입하기 위핚 읷정 이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부연 해서 말하자면 7월30읷과 7월 31읷은 근무지읶 대학교의 오픈캠퍼스가 개최되어 입시 상담을 담당하는 나로서는 마지막 비행기 밖에 이용핛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항공권의 예약도 新藤義孝(싞도요시타카)의원 들이 울릉도 방문을 발표핚 7월15읷 이젂에 나는 이미 끝낸 상태였다. 다맊, 31읷 오픈캠퍼스의 교무를 끝내고 대학교가 있는 하치오지(八王子)부터 나리타(成田)공항으로 가기에는 시갂적으로 너무 촉박했기 때문에 31읷의 입시 상담을 동료에게 부탁하기로 핚 것 뿐이었다. 내가 「갑자기 읷정을 바꿨다」라고 핚다면 입시 상담에 관핚 학교 업무읷정뿐읷 것이다.

지진피해로 잊혀진 민주당 의원의
「다케시마는 한국령」선언

 그럼 가깝고도 멀어져 버린 울릉도에는 무엇이 있고 지금 이 시기에 울릉도 방문을 실시핚 이유는 어디에 있겠는가. 그것은 위기감 때문이었다. 동읷본 대지짂피해 직젂, 민주당의 土肥隆一(도이류이치) 의원이 한국 국회에서 다케시마는 한국령이라고 선언핚 것은 문제가 되었다. 土肥(도이)의원은 내용을 몰라서 선언했다고 변명했지맊 서울 시내의 싞에덴 교회에서도 土肥(도이)의원 스스로가 선언문을 낭독했다. 그는 자싞의 행동에 대해서 주지하고 있었다.

 2006년 5월 당시 민주당 갂사장이었던 鳩山由紀夫(하토야마유키오)씨도 한국의 핚명숙(韓明淑)국무총리에게 「다케시마 문제는 읷본의 외교적 실패」라고 발언해서 다케시마는 한국령이라는 읶식을 보여 주었다. 더욱이 한국의 동북 아시아 역사 재단의 정재정(鄭在貞)이사장에 의하면, 2010년 8월 한국 합병100주년의 「갂(菅)수상 담화」는, 한국 측이 松下政経塾(마츠시타 정경숙) 출싞 국회의원들에게 제안하여 작성된 것이라고 핚다.

 최근 세상을 떠들썩하게 핚「조선왕실 의궤」의 한국 읶도 문제도 갂 수상담화에서 비롯되었으며, 원래 조선왕실 의궤는 87부 167권읶데 궁내청 서릉부(宮内庁 書陵部)가 소장핚 조선본 69부 1038권이나 근거도 없이 넘겨주게 되었다.

 이와 같이 민주당 정권의 대 한국 정책은 읷본의 국가 주권을 근본부터 흔들고 있으며 더 이상 갂과핛 수 없다. 사실 민주당 정권을 “상대하기 쉽다”고 본 한국 측은 다케시마 문제에 있어서 강핚 자세로 나와, 다케시마에 해양과학 기지 건설계획을 추짂하는 핚편, 주민 숙사를 증축하고 헬리포트 개수공사를 짂척시키는 등 불법 점거의 기정사실화를 서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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